‘생들기름’을 찾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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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07.09.25. 오전 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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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안병수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지은이 baseahn@korea.com

칼의 양쪽에 날을 내면 ‘양날의 칼’이 된다. 칼이 유일한 무기였던 시절, 이 양날의 칼은 괴력을 발휘했을 게 틀림없다. 아무 쪽으로나 내리쳐도 살상 효과를 낼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칼은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 자칫 잘못 휘두르면 자신을 벨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있는 기름, 그중에도 특히 ‘들기름’이 바로 이 양날의 칼이 아닐까. 정성 들여 짠 신선한 들기름은 우리 몸을 지켜준다. 천금 같은 오메가-3 지방산을 비롯해 많은 영양물질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다. 하지만 이 기름이 열을 받아 상하게 되면 흉물로 돌변한다. 그 많던 유익한 물질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대신 유해물질의 대명사인 트랜스지방산, 활성산소, 과산화물, 알데히드 화합물, 환경오염물질 따위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렇게 타락한 들기름은 우리 몸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크게 해친다.

이런 상식에서 최근 보건당국이 발표한 국내 식용유지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수십 가지 브랜드의 식용유지들에서 ‘벤조피렌’이라는 유해물질이 과량 검출됐는데, 그 가운데 들기름도 여섯 품목이나 끼여 있었던 것. 벤조피렌은 환경호르몬이자 발암 의심물질이다. 이 물질은 보통 300℃가 넘는 고온에서 만들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들 들기름이 제유 과정에서 그 정도 높은 온도를 거쳤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들기름은 자연이 동양인에게 선사한 위대한 선물이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아마인유를 주었다. 미국의 10대 영양학자이자 지방 연구의 대가인 안 기틀만 박사는 아마인유를 ‘액체금’(liquid gold)이라 부른다. 들기름도 뒤지지 않으니 당연히 같은 이름으로 부를 수 있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신선할 때’에 한해서다. 유감스럽게도 두 기름은 열을 참지 못한다. 식용유지 가운데 고온에 가장 취약하다.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기름의 숙명이다. 가열하는 순간 ‘액체금’은 ‘독극물’로 변한다.

“온도를 올려야 기름이 더 잘 짜져요. 맛도 고소해지고. 색깔도 물론 더 진해지지요.” 언론의 추궁을 받은 한 제유업자의 변명이다. 이런 목적이 과연 ‘액체금’을 포기해야 할 정도의 가치를 지닌 것일까. 착유기의 온도가 올라갈 때 기름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들은 정말 몰랐을까. 알고 있었다면 ‘양심불량’이고, 몰랐다면 ‘직무유기’다.

벤조피렌이 만들어진 들기름은 더 이상 들기름이 아니다. 그 속에는 벤조피렌뿐 아니라 수많은 유해물질들이 득실거린다. 이제 들기름의 탈을 쓴 이런 불량 기름들이 더는 발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추상같은 대책이 절실한데…. “이번 벤조피렌 검출 수준이 인체에 해로운 정도는 아니다.” 보건당국의 공식 코멘트다. 미리부터 업체들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

결국 모든 책임은 소비자 각자가 져야 한다. 어떻게 들기름을 선택해야 할까. 색깔이 연하고 맛이 덜 고소한 쪽을 택하는 게 일책일 수 있겠으나 소극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더 적극적인 방법은 없을까? 있다. ‘생들기름’을 찾으시라. 들깨를 볶지 않고 낮은 온도에서 짠 생들기름이 시판되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액체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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